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대기업들이 선택한 자금조달 방식 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Price Return Swap (PRS), 즉 주가주식스왑의 확산입니다. 화학, 배터리, 유통 등 다양한 업종에서 PRS를 활용한 자금조달 사례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파생상품을 통한 금융활동이 아니라 회계기준과 유동성 위기, 신용등급 방어라는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PRS는 기업이 보유한 주식, 대부분 자회사 지분을 금융사에 담보로 맡기고 향후 주가의 상승 또는 하락에 따라 차익을 정산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매각이 아닌 파생계약에 해당하며, 실제로는 주식담보대출의 성격을 띠는 구조입니다. 계약 기간 동안 배당권과 의결권은 유지되므로 경영권에 영향도 없습니다. 이처럼 PRS는 유동성을 확보하면서도 경영권을 지키고 부채비율을 낮게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회사채 시장이 경색된 현재 환경에서 매우 매력적인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25년 6월 회계기준원의 해석 변경 이후 PRS는 더 이상 회피 수단이 아닌 리스크 요소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왜 PRS를 선택했는가 – 숨은 유동성과 회피 전략의 묘수
기업들이 PRS를 선택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로는 전통적인 자금조달 경로의 붕괴입니다. 2023년 말부터 본격화된 금리 인상, 회사채 시장 경색, 크레딧 리스크 상승 등은 많은 기업들에게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특히 신용등급이 낮거나 하향 위험에 놓인 기업들은 채권 발행이 어려워졌고, 은행 대출 또한 조건이 강화되면서 유동성 확보가 절실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PRS는 주식을 팔지 않고도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자회사 지분을 활용해 단기간에 수천억 원에서 조 단위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재무제표상 부채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 기업들에게 결정적인 선택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는 부채비율을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시켜 주는 효과를 가져오며, 신용등급 방어 및 투자자 신뢰 유지에 도움을 줍니다.
또한 PRS는 경영권 유지 측면에서도 기업들에게 매우 유리합니다. IPO나 유상증자는 외부 투자자에게 지분을 넘겨야 하고, 경영권 희석 문제가 따르지만 PRS는 단순 계약에 불과하므로 지배구조 변화 없이 대규모 자금조달이 가능합니다.
계약 구조도 간단하고 빠릅니다. IPO는 몇 개월이 소요되는 반면 PRS는 수주일 내에 실행이 가능하며, 내부 정보공개 부담도 작아 경영상 유연성이 뛰어납니다. 이처럼 PRS는 대기업들이 급격한 자금 수요를 해결하는 데 있어 기존 금융수단의 단점을 보완한 일종의 편법적 합법 수단이었습니다.
회계기준 변경의 파급력 – 부채비율 급등, 신용등급 하락, PRS 중단 사태
2025년 6월 회계기준원은 PRS를 “실질적으로는 주식담보대출이며, 회계상 부채로 인식해야 한다”는 새로운 해석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기업들에게 단순한 지침 변경이 아닌 재무구조 전반을 뒤흔드는 근본적인 회계 충격으로 작용했습니다.
회계상 부채로 잡히지 않던 PRS가 일괄적으로 대출로 인식되면, 해당 금액은 전액 재무제표상 부채에 추가됩니다. 문제는 이로 인해 부채비율이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롯데케미칼은 기존 부채비율이 약 72% 수준이었으나, 1.3조 원 규모의 PRS가 부채로 재계상되면 단번에 100% 이상으로 급등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채비율은 국내 신용평가사의 주요 평가 지표 중 하나로 일정 수치를 넘으면 신용등급 하락, 회사채 이자율 상승, 차환 발행 실패 나아가 자금조달 경로의 차단이라는 연쇄적 문제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삼일회계법인은 대기업 감사에서 PRS를 전면 대출로 처리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메리츠증권 등은 PRS 신규 계약을 중단하거나 조건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숨겨진 부채가 한순간에 드러나는 셈이며, 이는 투자자와 채권단의 신뢰를 흔들고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PRS를 통해 약 5.8조 원을 조달했는데, 만약 회계 변경에 따라 이 금액이 전액 부채로 잡힐 경우 회사 전체의 신용구조가 재평가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PRS가 회계상의 해석 하나로 리스크 자산으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실제 사례로 본 PRS 자금조달 – 화학·배터리 업종 중심, 대기업도 예외 없다
2024년부터 2025년 6월까지 PRS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대규모 자회사 지분을 보유한 대기업이며 특히 화학, 배터리, 에너지 업종이 다수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대표적으로 롯데케미칼은 미국과 인도네시아 자회사 지분을 담보로 메리츠증권과 총 1.3조 원의 PRS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조달이 어려운 가운데 PRS로 유동성을 확보한 사례입니다.
SK온은 2024년과 2025년 초 두 차례에 걸쳐 총 2.5조 원 규모의 PRS 계약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이 자회사 지분을 활용해 지원한 형태로 그룹 차원의 유동성 관리 전략이었습니다.
한화솔루션은 독일 자회사 Q에너지의 지분과 이익참여권을 활용해 5,000억 원의 PRS를 진행했고, 효성화학은 베트남 법인 지분을 담보로 3,800억 원을 조달했습니다. 이외에도 CJ ENM 2,500억 원, 넷마블 2,200억 원, 이마트 1,300억 원, 롯데지주 등의 대기업들이 PRS를 통해 수천억 원 단위의 자금을 확보했습니다.
이들 기업은 공통적으로 다음의 특성을 보입니다. 해외 자회사 지분을 보유 중이거나 회사채나 은행대출이 어렵거나 한계에 봉착한 경우입니다. 또한 신용등급을 유지해야 하는 압박이 존재하며 재무지표 개선이 시급한 상황에 쳐해 있는 기업들입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PRS는 유일한 합법적 유동성 통로였으나, 회계 해석의 변화는 이 구조 자체를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이제는 PRS를 선택한 기업일수록 더 큰 재무 리스크를 떠안게 되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대비하기 위해 투자자 입장에서는 바뀐 회계기준을 확인하여 투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재테크 할 수 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킹형 ETF (대표 상품, 활용 시점, 개념) (0) | 2025.06.27 |
---|---|
크래프톤 (ADK 인수 목적, 시너지 효과, 핵심 기업) (0) | 2025.06.26 |
SK하이닉스 (HBM 강자, 수요 폭증, 복합 효과) (0) | 2025.06.26 |
금 ETF (베끼기형 ETF, 미치는 영향, 방향성) (0) | 2025.06.25 |
AI 전력 대란 (에너지 초과, 전력 구조, 해결 전략) (0) | 2025.06.25 |